서양의 역사에서 ‘헬레니즘 시대’는 대체로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죽음(서기전 323년)부터 로마 공화정이 끝나고 로마 제국이 시작되는 시점인 악티움 해전(서기전 31년) 까지를 일컫는다. 이 시기는, 정치적으로는 소박한 공동체적 정치체제에서 제국으로의 이행기이며 문화적으로는 지중해를 중심으로 동서양의 문화가 융합되는 때이다. 거대제국의 출현과 복합문화의 출현으로 인해 외골수들이 내놓은 심오한 사상 보다는 ‘안심입명’(安心立命)을 목표로 하는 삶의 지침이 널리 퍼진 시기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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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론

 

헬레니즘 시대의 사상가로는 알렉산드리아의 필론(서기전 20-서기 50 추정), ‘사도’를 자칭한 바울 등을 들 수 있다. 바울은 신약성서의 주요 서간들을 썼을 뿐만 아니라 기독교 신학의 뼈대를 세운 사람이므로 널리 알려져 있으나 필론은 철학사에서나 잠깐 언급될 뿐이다. 그는 성서에 대한 우화적 해석을 시작한 사람들 중의 하나이기도 하며, 신의 권능이 자연을 통해 나타난다고 하는 자연신학의 창시자들 중의 하나이기도 하고, 신앙과 이성의 조화라는 중세의 핵심 문제에 처음으로 부딪혔던 사람들 중의 하나이기도 하고, 이성의 한계를 인정한 위에서 신에 대한 신비적 체험의 중요성을 강조한 사람들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중세 이후 사상의 역사에서 중요한 문제는 거의 모두 다 제기한 사람인 셈이다.

필론에 관한 소개글은 대체로 이런 식으로 시작한다: 고대 알렉산드리아의 유대인 철학자. 그에 대한 이러한 소개에는 많은 것이 함축되어 있다. 필론이 살았던 곳은 북아프리카의 알렉산드리아였다. 지금은 그 곳이 이집트라는 국가의 일부로서 우리에게 떠오르지만 당시만 해도 지중해 문화가 흘러들고 새로운 흐름이 생겨나는 곳의 하나였다. 그 곳에서 살았던 필론은 유대인 사회의 지도자였다. 정확하게 말하면 그는 ‘디아스포라 유대인’이었다. ‘디아스포라’(διασπορά, diaspora)는 조국을 떠나 고난을 받는 이들을 가리키는 말로 널리 쓰이지만 원래는 ‘해외에 이주하여 정착한 유대인’들을 가리켰다. 이들은 모국어인 히브리어를 사용하기도 하였겠지만 지중해 세계의 공용어라 할 수 있는 희랍어를 사용하였다. 필론은 유대인이었으므로 유대교를 믿었으나 희랍어를 사용하였고, 알렉산드리아에 살았으므로 희랍식 교육을 받았다.

필론을 비롯한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의 상황은 이른바 ‘혼성문화’ 형성의 전형적인 구도를 보여준다. 그들이 태어난 곳은 여러 문화적 흐름이 중첩되는 곳이었다. 그들은 유대인이었지만 희랍어를 쓰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최초의 신약성서는 희랍어로 쓰여졌다. 예수가 종말을 선포하면서 사용하던 아람어는 이들에 의해 희랍어로 번역되었던 것이다. 원인이 있어야만 뭔가 생겨날 수 있다고 하는 희랍 고유의 합리주의는 ‘무로부터 세계를 창조한’(creatio ex nihilo) 유대의 신과 충돌하였으나 이들에 의해 조화를 이루었다. 이러한 번역과 창조적 융합을 통하여 팔레스타인 지방의 종말론 운동이었던 예수의 가르침은 보편적인 종교의 모습을 가지게 되었다.

우리는 흔히 창조적 인간과 융합적 사유를 이야기한다. 그것은 어떤 조건에서 어떤 교육을 통해서 가능할까. 필론의 예에서 몇 가지를 추려낼 수 있다. 먼저 살고 있는 곳. 우리는 어디에 살고 있는가를 물어보자. 지리적인 위치도 고려할 수 있겠지만 삶의 경험들이 다양하게 교직되는 곳이라는 점이 더 중요해 보인다. 물론 뒤얽힘 자체가 하나의 의미있는 것으로 인정되려면 이질적인 것을 받아들이는 관용의 정신이 바탕에 깔려 있어야 함은 당연하다. 관용을 바탕으로 한 뒤얽힘에서는 필연적으로 번역이라는 현상이 일어난다. 하나의 언어가 다른 언어로 옮겨질 때는 다 옮겨지지 않고 남는 것이 있다. “사뿐히 즈려밟고”를 영어로 옮긴다고 해보자. 하다못해 한 언어에서도 특정 지방의 사투리를 표준말로 옮기려면 얼마나 많은 수고가 필요한가. 어쨌든 그러한 ‘나머지들’을 최대한 없애려는 노력이 사람들의 언어와 행위 속에서 자주 벌어질 때 문화적 힘은 강력해진다.

희랍 세계의 제우스와 같은 신이 유대인의 신으로 번역되는 과정에서 필론은 얼마나 고민을 했을까. 로마 시민으로 태어난 바울이 없었더라면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에게, 더 나아가 지중해 세계의 ‘이방인들’에게 예수의 메세지가 번역되어 전달될 수나 있었을까. 이러한 혼성문화 속에서 성장한 이른바 코스모폴리탄들이 전환기의 창조적 사상을 만들었던 것이다.

어려서부터 흔들림없는 올곧은 신념과 정체성을 주입받고 오로지 하나의 목표를 향하여 다른 지역 사람과 문화는 철저하게 배척하면서 살아가는 이들 사이에서는 어떤 인간들이 생겨날까. 그렇게 멀리 갈 것도 없이 10여 개의 단어만 가지고도 어려움없이 살아갈 수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