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왕 효종의 둘째 딸인 숙명공주(1640-1699)의 글씨[왼쪽]가 잠깐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찾아보니 글씨가 썩 귀엽다. ‘ㅇ’을 크게 쓴 탓일까. 조금 불균형의 느낌이 들 정도다. 이게 잘 쓴 글씨인지 아닌지는…

숙명공주(왼쪽)와 효종(오른쪽)의 글씨/국립중앙박물관

숙명공주(왼쪽)와 효종(오른쪽)의 글씨/국립중앙박물관


한글은 글씨를 멋지게 쓰기가 어렵다. 오른쪽에 있는 것이 효종의 답장인데 굵은 붓으로 써서인지 그런대로 볼만하지만 획이 가느다란 부분은 그렇게 멋지지 않다. 훈민정음 언해를 보면 한글은 붓이 아닌 막대기로 쓰는 게 더 적당하게 만들어진 듯하다. “어린 백성”들이 글쓰기 도구를 제대로 갖추었을리 없을 것이라 여기고 그들의 처지에 걸맞는 글꼴을 만들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화성 용주사 대웅보전 글씨(정조)/경기도 화성 용주사 공식사이트

화성 용주사 대웅보전 글씨(정조)/경기도 화성 용주사 공식사이트

한자는 붓으로 쓰건 오늘날 널리 사용되는 필기도구로 쓰건 써놓고 나면 제법 볼만하다. 절에 가면 볼 수 있는 대웅전 현판 글씨는 웅장한 느낌까지 준다. 경기도 화성 용주사에 있는, 조선 왕 정조가 쓴 ‘대웅보전’(大雄寶殿) 글씨를 보면 꽉 차 있다. 이건 굵은 붓으로 썼을 뿐만 아니라 획 사이의 여백을 최대한 줄여서 그러한 것이다. ‘대웅전 체’라 해도 되겠다. 김정희가 말년에 쓴 서울 봉은사 편전 현판은 그에 비하면 획 사이에 여백이 많다. 그렇게 여백이 많은데도 글씨가 좋은 것이 바로 김정희의 필력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평가도 있다.

김정희의 글씨/서울봉은사 공식사이트

김정희의 글씨/서울봉은사 공식사이트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컴퓨터로 글을 쓴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손글씨가 엉망이다. 열심히 연습해도 잘 쓰기 어려운게 한글 글씨인데, 타이핑해서 기계로 출력하다보니 더 심란해져 버렸다. 다 큰 어른이 되어서도 글씨체가 어린애 같다고 스스로 괴로워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아무리 노력해도 한글은 멋지게 쓰기가 어렵다. 이리저리 궁리를 해보았다. 한글 단어들은 획수가 적다. 한자도 획수가 적은 글자들은 볼품이 없다. ‘大’자는 멋이 없다. 굵은 붓으로 쓰지 않으면 모양이 안나온다. 한글 ‘나’도 그렇다. 반면에 획수가 많으면 한자건 한글이건 단어들이 그런대로 볼만하다. ‘뚫’ 같은 글자들은 괜찮다는 말이다. 이런 글자들로만 이루어진 단어는 드물고 한글 단어들은 대체로 획수가 적으니까 글씨를 큼직하게 쓰되 가로로 조금 늘여 쓰면 졸필은 면할 수 있다.

글씨는 작게 쓰기가 쉽다. 한글 단어들은 크게 써보면 정말 볼품없을 때가 많다. 난처한 경우를 하나 떠올려보자. 결혼식장이나 문상을 갈 때다. 축의금 등을 낸 다음에 방명록에 이름을 쓰게 하는 곳이 있다. 그럴 때 곤란한 것이다. 평소에 글씨를 작게 써버릇 한 사람들은 싸인펜을 쥐고 황망해 한다. 이럴 때 좋은 방법은 자신의 이름을 한자로 큼지막하게 쓰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한자 필체다. 이게 잘 쓰지 못하면 더 망신스럽다.

한글을 배우기 시작하면서부터 한자도 배우고 한자 쓰기도 좀 익히면 재미있고(?) 쓸모도 있을 듯하다. 한자는 중국어가 아니다. 동아시아 세계의 고전 글자이다. 한자는 굳이 중국식으로 읽지 않아도 된다. 한국 사람들이 읽듯이 독음만 읽을 줄 알아도 된다. ‘한자 네이티브’라는건 없지 않은가. 날마다 심심풀이 삼아 익히면 늘어나는 것이다. 타고난 언어감각 같은 것이 크게 작용하지도 않는다.

언어학적으로 규명된 것인지는 모르겠는데, 아무래도 동아시아 사람들은 타 지역 사람들보다는 한자를 잘 익히지 않을까. 한국에서 20년 넘게 살아온 로버트 할리가 하는 한국말은, 들으면 곧바로 외국인이 하는 것임을 알아차릴 수 있다. 꼭 그처럼 한국인이 영어권에서 그만큼 살아도 영어 발음 수준은 그 정도일 것이다. ‘영어는 외국어’라는 것을 철썩같이 인정하고 들어가야 비로소 영어의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 어쨌든 한자 익히기는 동아시아 사람들에게 일종의 비교우위가 있을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