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s by 이강룡

[맥락과 표현] (6) 딱딱한 표현과 말랑한 표현

신호등의 빨강은 정지하라는 말이니 해석이 필요없다. 표현이 객관적이고 딱딱하다. 교회 십자가 첨탑의 빨강은 여러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 표현이 주관적이고 말랑말랑하다. 해석이 필요없는 표현은 딱딱하고, 쉽든 어렵든 해석이 필요한 표현은 말랑하다.

자동차 뒤 유리에 붙은 문구인 “초보 운전”은 아주 딱딱한 표현인 ‘방어 운전 요망’을 약간 부드럽게 고친 것이지만 여전히 단단하다. “저도 제가 무서워요”는 말랑한 표현에 가깝다. “답답하면 먼저 가세요”는 그 둘을 무르게 절충한 표현 같다.

“아기가 타고 있어요”는 말랑한 표현의 일종이다. 아기가 타고 있으니 안전하게 천천히 가겠다는 말도 되고, 재촉하지 말고 알아서 추월해 가라는 말도 되는데, 정작 이 문구가 생긴 유래를 보면 그게 아니다. 이 문구를 원래 목적에 맞게 딱딱하게 고치면 ‘비상시 유아 우선 구조’가 된다. “까칠한 아기가 타고 있어요”라든지 “소중한 내새끼 타고 있다” 따위 문구는 딱딱한 기능에도 적합치 않고 말랑말랑한 기능에도 적합치 않아서 뒤 운전자에게 불쾌함만 준다. 학원 봉고 뒤에 붙은 “미래의 노벨상 수상자가 타고 있어요”라는 문구는 말랑하게 창작한 유치뽕 광고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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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락과 표현] (5) 성급한 꼰대의 오류

스무살 남짓 대학생처럼 보이는 남녀 한쌍이 카페 옆 자리에서 말을 주고받는다.

여자: “이제 그런 버릇 좀 고쳐.”
남자: “20년을 이렇게 살았는데 어떻게 고치니?”

나는 빵 터진 웃음을 추단하느라 자리를 잠시 피했다. 자리에 돌아온 날 흘끔거리는 걸 보니 들킨 것 같다. 곰곰이 돌아보면 나 역시 성급한 꼰대의 오류로 점철된 대학생 시절을 보낸 것 같다. 문학청년 시절 끼적였던 습작 공책들을 오랜만에 펴 보니 ‘삶이란···’ 또는 ‘인간이란···’ 같은 말로 시작하여 ‘~하는 법이지’ 또는 ‘~하기 마련이다’로 끝낸 글이 무척 많았다. 느낌표는 왜 또 이리 많은가. 후배들을 향해 꼰대스러움을 마구 분출하던 복학생 시절 메모를 몇 개 옮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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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락과 표현] (4) 형식은 내용의 미리보기다

글쓰기란 좋은 형식에 좋은 내용을 담으려는 시도다. 표현 형식에는 글쓴이의 관점이나 태도가 드러나기 마련이라서, 내용을 전달하기 위해 어떤 단어를 택하여 어떤 방식으로 전개하는지 보면, 글의 내용도 대강 짐작할 수 있다. 한 트위터 사용자가 국립국어원 트위터로 질문을 보냈다.

“하마트면이 맞아여? 하마터면이 맞아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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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락과 표현] (3) 일어난 일과 일어났을 법한 일

조마리아 선생이 아들 중근에게 보냈다는 편지(트위터 게시물 갈무리)

조마리아 선생이 아들 중근에게 보냈다는 편지(트위터 게시물 갈무리)

2월 14일, SNS에는 안중근 의사 이야기가 많이 올라왔다. 추모는 사형 선고일인 2월 14일이 아니라 순국일인 3월 26일에 하는 것이 자연스럽지만 안중근 의사의 정신을 한 번 더 되새기는 일이 나쁠 리는 없다. 이날 이와 관련한 SNS 게시물 중에 어머니 조성녀(세례명 조마리아)가 아들 안중근에게 보냈다는 편지가 유독 많이 보였다. “네가 항소를 한다면 그것은 일제에 목숨을 구걸하는 짓이다. 네가 나라를 위해 이에 이른즉 딴 맘 먹지 말고 죽으라.” 대략 그런 내용이 담겼다. 《안중근 평전》(황재문 지음, 한겨레출판)을 읽은 직후라 어머니가 어떤 분인지 더 궁금해졌다. 그런데 다시 검토해 본 평전에는 안 의사와 어머니 사이에 오간 이야기가 전혀 나오지 않았고, 안중근 의사에게 보냈다는 편지 역시 아예 언급되지 않았다. 저자에게 이유를 물어 보았는데, 아래에 답변 내용을 간추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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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락과 표현] (2) 허구로 쌓아올린 진실

2013년이 저물 무렵 SNS에는 ‘반기문 사무총장 송년사’가 떠돌았다. “건물은 높아졌지만 인격은 더 작아졌고, 고속도로는 넓어졌지만 시야는 더 좁아졌다”라고 시작하는 이 글은 해를 넘긴 다음에는 “반기문 사무총장 신년사”라고 제목이 바뀌어 여러 온라인 공간에 퍼졌다.

2013년 12월 27일 받은 카카오톡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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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락과 표현] (1) 사실로 쌓아올린 ‘뻥’

‘쿠야시이'(悔しい)는 일본 운동 선수들이 경기에서 제 기량을 펼치지 못해 아쉬울 때 자주 쓰는 표현이다. 일본어 사전에는 ‘분하다’가 1번 뜻으로 나오지만, 운동 선수들이 저 말을 쓰는 건 경쟁자에게 져서 분하고 억울하다는 걸 표출하려는 게 아니라 자신을 냉정하게 돌이켜 보거나 스스로 다독이기 위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아사다 마오는 쿠야시이 때문에 요즘 한국어 맥락에서 오해를 가장 많이 받는 선수일 것이다. 마오가 김연아와 경쟁에서 뒤처질 때마다 한국의 스포츠 매체는 어김없이 ‘분하다’를 제목으로 뽑고 잔뜩 찌푸린 마오의 사진을 함께 게재한다. 그리고 승리를 만끽하는 ‘국뽕’들의 풍성한 댓글 향연. 연아와 같이 경기에 나왔는지 아닌지 전혀 중요하지 않다. 연아와 함께 출전하지도 않은 대회에서 마오가 트리플악셀을 실패하고 인터뷰에서 쿠야시이라고 말했다면 한국 스포츠 매체엔 〈’분하다’ 마오, 연아를 겨냥한 강한 승부욕 드러내〉 같은 기사가 뜬다. 경기가 만족스럽지 않았다고 말했을 뿐인 마오에게는 1번 쿠야시이처럼 ‘빡치는’ 상황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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